
그나저나, 아이들이 정말 예뻤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삶을 지켜나가지만 길거리의 노숙하는 노인들은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나', 반려동물과의 삶을 소중히 여기지만반려동물이 늙고 병들면 고려장하듯 버리는 '나', 정부의 부패에 대해서 강력히 반발하는 포스팅을 써대지만 회사에서의 부당한 지시는 묵묵히 수행하는 '나'. 아무리 부당함이 일상화된 대한민국이라지만, 이렇게 신경증적인 삶을 살다보면 자신을 용서하기 힘들 때가 강력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린왕자가 만난 술고래 아저씨마냥 술을 마시며 잊을 수도 있겠지만, '잊는다'는 행위는 결국 앞으로도 계속 부당함의 존재를 인정하겠다는 자기합리화의 전초전일 뿐이다. <벨라>는 '잊기'보다는 '기억'하고 '행동'함으로써 자기치유의 길을 걷는 이야기다.
가족, 임신, 상처. 이 3가지의 중요한 코드는 영화의 시작이자 곧 끝이다. '원자화된 현대인'은 선택이 아닌 결과다 - 무심하고 시크한 도시남자든 도시여자든, 그들이 품위에 걸맞는 식생활과 섹스어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을 신경쓰는 무심하고 시크한 원자가 되는 게 가장 쉽다. 한 마디로, 살기가 팍팍하다는 이야기. 이 팍팍한 삶을 도저히 싱글맘으로 살 수 없다고, 아이에게 자신과 같은 성장기를 주고 싶지 않다고, 준비되지 않았다고 울부짖는 니나의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이야기로 환원된다 - 더불어 늘 가족을 꿈꾸지만 여전히 꿈만 꿔야 했던 니나의 이야기는, '결혼'이라는 삶의 돌파구마저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놓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최신 트렌드와 살며시 오버랩된다. 삶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언제나 나오는 키워드 의사 사위, 부잣집 따님 등 이른바 미천한 '나'를 건져주실 백마탄 왕족들밖에는, 우리네 삶을 바꿀 계기가 없는 것일까. 자신이 가진 삶의 동력은 외면한 채, 타인이 지닌 삶의 배경에만 집중하는 비생산적인 행태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입에서 튀어나오는 현실은 화장실 냄새로 가득찬 우리동네 뒷골목마냥 비루하기 짝이 없다. 호세의 가족 역시 평범하지는 않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행복하다. 가족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잘 내려줬다는 '가족의 탄생' - 보지는 못했다만 - 처럼, 가족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나가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이 메시지는 호세가 결코 평범하지만은 않은 결정을 형과 의논하여 내리는 것의 근간이 된다.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은 결국은 자신의 주변에 있다고나 할까.
중간에 호세가 매니(호세의 형)를 질타하는 장면은 꽤나 인상깊다. 상처 때문에 자신 안으로 침잠한 듯한 호세가 니나로 인해 수면위로 떠오르고, 그로 인해 눈감았던 매니의 잘못된 면들을 지적하는 장면은 제법 만족스러운 카타르시스를 준다 - 직원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왜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지, 불법체류자 신분을 이용해서 부당한 대우를 하는지? 비록 미국이라는 무대에서의 질문이지만, 바다 건너 우리들 역시 이 질문의 칼날을 피해갈 수는 없다. 우리 역시 우리들만의 역사적 질곡으로 인한 상처에 갇혀서, 우리 밖의 '그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질끈 눈을 감거나 '증오'라는 편리한 기제로 대응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며시 자문해본다.
임신한 채 해고된 니나가 가진 싱글맘에 대한 고민은 왜 여성들이 '낙태'라는 비인간적인 선택을 결국 할 수밖에 없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낙태라는 선택을 한다고 해서, 그녀(들)가 아기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섭도록 냉정하게 먹이를 노리는 사회로부터 아기를 지킬 자신이 없어서, 그토록 고통스러운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든든한 파트너 즉 남편을 원하는 것이다 - 물론 영화는 '입양'이라는 대안도 내놓았다. 물론 이러한 대안은 사회적인 인식의 변화를 동시에 가져가야 그 의미가 있을 것인데 한국이라는 지독히도 가족주의적인 사회에서는 아직 그 뿌리가 얕아보이기는 하다. 그래도 갈수록 낮아지는 출산율을 고려하면 정부 역시 '입양'이라는 대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혼수로 아파트 열쇠, 차 열쇠를 열심히(?) 준비할 수 있는 부부보다는 월세로 살지 아니면 빚을 내서 전세를 들어갈지를 고민해야 하는 부부의 비율이 더 커질 가능성이 훨씬 크기에, 자연스러운 출산율 장려는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가 되기 십상이다 - 혹은 그렇게 될 것이라는 데 내 저금통 안의 동전 전부를 건다.
바쁘게 살면서 주위를 빠르게 지나치면서 타인에 대해서도 그냥 지나치다보면 매니처럼 타인에 대한 관심도 함께 스쳐지나치기 쉽다. 그저 스쳐지나갈 수 있는 니나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는 호세와 솔직하게 도움을 청하는 니나는 타인의 관심에 목말라하면서도 타인에게 손내밀 줄 모르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자화상이다. 그저 혼자 상처입고 뒹굴기보다는 솔직하게 도움을 청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나'에게, 이 영화는 꼭 필요한 만큼의 감동을 줬고 꼭 필요한 만큼의 눈물을 줬다.
p.s. 아역으로 나온 2명의 아이들이, 너무너무너무 예쁘다. 자식은 역시 딸이 최고라는 선입견이 한층 더 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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